01. 현남 오빠에게 / 조남주 외 / 다산책방 / E.
현남 오빠에게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한남을 비꼰 건가 싶었는데 진짜였다니! 여자들은 한녀라고 불려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왜 남자들은 한남이라고 불리면 기분 나빠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도둑이 제 발 저린 거겠지. 아니면 말고. 여기서 또 궁금한 게 왜 한국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인터넷 서점 리뷰 페이지까지 찾아가서 별점 테러를 하는 그 찌질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웃기는 건 이렇게 대놓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홍보하는 책이 아니면 별점 테러는 하지 않는다는 거다. 왜냐면 그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요. 대한민국 문화 소비의 주체는 이삼십대 여성이고, 그들은 돈을 쓰지 않으니까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판매자이고 판매자는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잘 팔리는 상품에 집중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일부 페미니즘 혐오자들이 별점 테러를 한들 판매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여성 작가 7인의 단편을 묶어 만든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미 글을 읽어본 작가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작가도 있었는데 저마다 개성이 묻어 있는 단편들이었다. 일곱 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표제로 쓰인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였다. 82년생 김지영도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다큐멘터리를 글로 읽는 기분이었는데, 이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운 좋은 한국 여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소설 속 현남 오빠를 만나 봤을 것이다. 어려서, 사랑에 눈이 멀어서, 착해서 한국 여자들은 현남 오빠들의 '후려치기' 기술에 당한다. 후려치기는 가볍게 외모 지적부터 시작해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을 씌운 후 최종 목표인 내 말 잘 듣는 예쁜 액세서리 만들기를 향해 달려간다. 그들의 후려치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매사에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중요시 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를 만나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마당에 사사건건 자기 입맛에 맞춰주길 바라는 상대를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린 그들의 엄마가 아님을 명심하자.


02.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 마루야마 겐지 / 바다출판사
시골 생활에 대한 환상을 깨다 못해 뿌리까지 뽑아 분해해서 우주 저 멀리까지 날려주는 책이다. 나는 이십여 년을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골이 어떤 곳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시골의 폐쇄성, 각박한 인심, 일 년 내내 이어지는 노동, 크고 작은 불편함 등을 알 길이 없다. 경치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도 좋을 테니 시골 생활 또한 평온할 거라 막연히 상상하고 내려가는 순간 자다가 뒤통수 맞고 뺨까지 맞을 일만 남는 거라고 보면 된다. 시골 사람들은 절대 순박하지 않다. 도시보다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더 돈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본적인 예의도 없다. 이웃사촌이라는 명목하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물 좋고 공기 좋다는 것도 옛말로 땅값이 싼 시골에 온갖 공장이 들어서면서 내가 먹는 물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 수 없고, 공기의 질 또한 좋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작은 땅에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꿈꾼다면 얼른 꿈 깨시길 바란다. 아무리 작은 땅이라도 농사는 농사고 농사일만큼 품이 많이 들면서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도 드물다. 시골은 정말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03. 그날들 / 윤제이 / 도서출판 오후 / E.
가난이 싫어 사랑보다 돈 많은 남자를 선택한 정원주와 자신의 첫사랑을 13년 동안 잊지 못한 남자 서윤의 이야기.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마다 다른 아픔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픔을 다스리는 방법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래서인지 확 끌어당기는 매력은 부족했지만 대신 차분한 어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7년의 결혼 생활 동안 생기 없이 무채색이었던 원주가 윤과의 재회 후 따뜻한 빛깔로 채워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3년 만에 다시 만난 원주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자신에게 오길 묵묵히 기다리는 윤을 보면서 한편으론 감탄스러웠고 한편으론 답답했다. 13년을 기다렸는데 또 기다릴 수 있는 사랑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인 것이더냐.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한 남주인공이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다.  


04.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 열린책들 / E.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결혼 후 아들이 생기지 않자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고 참다못해 부인과 함께 고향을 떠난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아마존 밀림 마을 '엘 이딜리오'다. 하지만 혹독한 열대우림은 부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어코 부인의 생명을 앗아간다. 모든 것을 잃은 안토니오가 험난한 아마존에 정착하기까진 인디오 수아르족의 도움이 컸다. 안토니오는 수아르족에게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과 더불어 생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밀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치과 의사에게 얻은 연애 소설을 읽는 시간이다. 어느 날, 이기적인 외부인 때문에 어린 새끼들과 수컷을 잃은 암살쾡이가 마을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밀림을 잘 알고 있는 노인은 암살쾡이를 잡기 위해 수색대를 꾸려 밀림 깊은 곳으로 향한다. 암살쾡이와의 마지막 결전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노인은 여전히 연애 소설을 읽는다. 다른 인종을 존중할 줄 알며, 자연과 더불어 살 줄 알고, 무언가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노인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곳은 분명 지금보단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기에 소설은 소설로 남는다. 열대우림 버전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이었다.